빈산소수괴

▲ 빈산소수괴 영향을 받기 전 그곳

올여름 유난히 장마가 길었습니다. 각종 보도로는 역대 최장 장마라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어쨌거나 지루한 장마가 오랫동안 지속하였습니다. 긴 장마 덕에 곰팡이만 신난 듯이 보였습니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있어 정말로 답답한 장마를 보낸 듯합니다.

장마가 끝나고 오랜만에 다이빙하러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던 바닷속이었는데 입수 후 보게 된 바닷속은 잿빛이었습니다. 마치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울러 살아있는 생명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동하는 생선들을 제외한 풀이며 어패류들이 모두 다 죽었습니다. 바닥에는 각종 조개와 고기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긴 장마 기간 가끔 바다에 나가 보았습니다. 입수는 하지 않았지만, 수면에 떠 있는 고기들을 보고 심상찮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은 직감했지만 이렇게 심할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제가 자주 가는 바다에는 적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닷속에서 일어난 일이 적조가 원인일 거라 추측을 했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곧바로 태풍이 왔습니다. 연거푸 두 개나. 태풍이 지나가고 다시 바닷속에 가 보았습니다. 여전히 잿빛을 보여주고 있었고, 태풍의 영향인지 가벼운 것들은 다 사라지고 무거운 것들만 바닥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 느낌이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색깔이 없는 바닷속이라니…… 상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적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이 바다에서 일어난 일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적조와 녹조는 거의 매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꽤 심각하게 온 적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바닷속 생명체들이 초토화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적조에게 범행을 씌우기에는 좀 억지스럽지만 제 상식으로는 적조를 범인으로 몰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뉴스를 시청했습니다. 지역 방송에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사용하며 이번 장마와 태풍으로 바다에서 벌어진 일들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현상을 얘기하며 제가 사는 지역과 인근 지역의 양식장에서 키우는 미더덕과 홍합 등이 전부 폐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은, 긴 장마와 연이은 태풍으로 인해 바다에 민물이 많이 유입되었고 그 결과로 민물 층이 20m 가까이 쌓여 산소 부족으로 양식장에 피해를 봤다는 것이었습니다. 방송을 볼 당시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는데 다이빙하러 다니면서 느낀 게 적조 때문이 아니라 며칠 전 TV에서 방송했던 그 현상이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현상이 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기억나지 않던 단어를 오늘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빈산소수괴“. 해당 기사에서 양식장의 피해가 빈산소수괴로 인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다이빙하는 곳에서 일어난 바닷속 일이 이것과 연관이 있는 건지 적조와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황량한 바닷속이 얼른 복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제 다이빙 가서 풀들이 4m 수심까지 내려온 걸 확인했습니다. 애초에는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갔더니 1m, 그다음엔 2m에서 보이더니 이젠 4m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해초에 쥐치 새끼들이 붙어 있는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놀라운 자연의 생명력과 회복력을 조금씩 확인하는 다이빙이 주는 즐거움이 큽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바닷속이지만 오늘도 뭔가 달라진 게 없나 가 볼 계획입니다. 가볼까요? ^^

※ 기사 :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009271137139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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