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다이빙을 왜 배우려 하십니까?

제가 5년전 처음 동굴다이빙을 배우기 위해, 동굴다이버가 되기 위해 강사님께 교육이 가능한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강사님께서 동굴다이빙을 왜 배우려고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메일로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며칠동안 내가 왜 동굴다이빙을 배우려 하는지 고민을하고 배워야 하는 이유를 생각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하게 될 나의 다이빙에 대해 생각한 결론을 강사님께 메일로 보낸 내용입니다.

동굴다이빙을 왜 배우려 하십니까?
동굴다이빙을 왜 하려고 하십니까?
이 둘의 질문 중 제겐 후자가 더 의미 있는 질문입니다.
후자가 정리되면 전자는 자연스레 정리될 것 같아 후자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이곳에서 많은 질문을 받지만, 대답 못 하는 물음들이 있습니다.
다이빙 횟수가 제법 되는 다이버는 제가 혼자 야간 다이빙을 가면 “그 시간에 고기도 안 잡으시는데 무슨 재미로 가십니까?”
다이빙에 갓 입문한 초급자는 “야간에 혼자 다이빙 가면 무섭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산악자전거를 즐기는데 거의 대부분이 야간 산악라이딩입니다.
이 또한 많은 분이 물어보십니다.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위험하지 않습니까?”

몸소 실천하거나 경험해보지 않았음에서 오는 물음들입니다.
이런 질문들을 받으면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타인의 경험을 이야기나 책을 통해 머리로 익히는 것과 몸과 마음, 느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의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그러합니다.

고기를 잡지 않아도 다이빙을 즐길 충분한 꺼리들이 바닷속에는 무궁무진하게 존재함을,
주간이든 야간이든 물에 들어가는 그 자체로 좋음을,
비록 내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지만 바다에서는 나도 그 속에 있는 존재들과 비교해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정말 무서운 건 자연이 아니라 자연을 우습게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 몸과 마음이 느끼는 감정은 불빛이 미약하거나 없어도 충분히 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로 설명을 못 하겠습니다.
물론 제 표현력의 부재가 불러다 준 결과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굳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대부분이 이해를 못 하고 받아들이지를 못했습니다.
설명해서 되는 문제가 아님을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다이빙의 90% 이상은 야간다이빙입니다.
동호회에서 한 달에 한 번 배 타고 먼바다 가서 다이빙하는 걸 제외하곤 항상 야간다이빙이죠.
매번 혼자서 야간 비치다이빙을 가면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고 고요한 깜깜한 바다…..
그 속을 들어가면 이유 없이 편해지는 느낌…..
본능에 충실하자는 마음 하나만으로 찾아가는 그곳……
미끄러지듯 스르르 들어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오는 마음…..
언제까지 이런 느낌과 감정을 느끼고 다스리며 살고 싶다는 욕망의 꿈틀거림…..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동굴다이빙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야간다이빙 환경과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위험수위의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니 위험수위는 제외하고 “다이빙 환경에서 오는 느낌이 그러할 것이다”라는 부분만 얘기하는 겁니다.
동굴다이빙 사진과 영상물을 접하고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습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처음으로 해외 원정다이빙을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서야 동굴다이빙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  된 안타까움과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남들이 적어 놓은 책과 찍어 놓은 사진과 영상물들을 보고, 듣고, 생각하기만 하는 머리로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게 질문을 주시는 분들과 똑같이 나도 동굴다이버에게 “그 위험한 동굴다이빙을 왜 합니까?”라는 질문을 하면 그분도 쉽게 대답을 못 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기에 그분의 얘기가 온전히 와 닿지 않을 거라 예상합니다.

남이 느끼는 걸 나도 느낄 때 동질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 동질감은 그냥 앉아서 생기는 게 아니기도 합니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공유하고 함께 행동할 때 형성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입니다.

내가 그 느낌들을 경험해 보리라는 마음이, 마음이 그리 가기 때문입니다.

바다든 동굴이든 천년만년 살아남아서 껌껌한 물속이 주는 고요하고 편안한 그 느낌들을 가슴에 담고 싶습니다.
내가 처음 세상으로 나왔던 회귀 본능을 일깨우는 그 뭔가를 찾아가는 여행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려면 당연히 그 환경에 익숙한 선임자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게 순서지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

2012-04-26  01:48 발송

동굴다이버가 되기 위한 과정이 그러고 보니 참으로 길었습니다. 2012년 5월에 처음 교육을 시작해서 2017년 10월에 마무리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그 길었던 시간들이 제게는 더욱 소중하고 값진 순간들이었음을 이번에 느꼈습니다. 빨리빨리가 아닌 느림의 속도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다이빙에 대한 생각과 경험, 부족한 부분들에 대한 반성의 시간들을 갖게 만들었고, 그것은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순환의 구조로 스며들게 됐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속담이 주는 교훈을 잊을 수 없는 지난 시간들입니다.

이제는 테크니컬 다이버가 아닌 케이브 다이버로 절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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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별

이불속도 컴컴 하더라구요~~ㅎㅎ


고성에 케이브 찾으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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